인간을 위한 AI 기술 발전 — 노동친화적 AI(PWAI)와 조향(Stee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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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일자리를 얼마나, 어떤 방식으로 대체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2022년말 챗GPT 혁명 이후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그런데 최근 경제학계에서는 질문의 무게중심이 조금씩 옮겨가고 있다. AI가 노동을 얼마나 대체하느냐를 묻는 데서 나아가, ‘AI 기술 발전의 방향 자체를 인간에게 더 우호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가’를 묻기 시작한 것이다. 이 질문을 압축적으로 담고 있는 두 개념이 PWAI(pro-worker AI)조향(steering) 이다. 오늘은 이 두 개념이 어디에서 왔고, 왜 최근 정책 논의의 한가운데로 들어왔는지를 짚어본다.

외생변수에서 내생변수로

솔로우 모형으로 대표되는 전통적 경제성장론에서 기술 발전은 외생변수(exogenous variable)로 다뤄져 왔다. 기술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었고, 경제학의 역할은 그렇게 주어진 기술이 만들어낸 결과—특히 불평등—를 사후적으로 완화하는 데 있었다. 그 사후적 대응이 재분배(redistribution), 즉 조세와 이전지출을 통한 교정이다. 이후 논의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애초에 시장에서 소득이 분배되는 방식 자체를 사전에 더 공평하게 설계하자는 사전분배(predistribution) 개념으로 확장됐다. 이는 예일대 정치학자 제이컵 해커(Jacob Hacker)가 2011년 논문 「The Institutional Foundations of Middle Class Democracy」에서 제시한 것으로, 최저임금이나 단체교섭권 강화처럼 세전 소득의 분배 구조 자체를 바꾸는 정책들을 가리킨다.

최근의 논의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재분배도, 사전분배도 아닌, 기술 발전의 ‘방향’ 그 자체를 인간 친화적으로 유도하자는 것이다. 이 발상의 이론적 뿌리는 다론 아제모을루(Daron Acemoglu, MIT)가 2002년 Review of Economic Studies에 발표한 논문 「Directed Technical Change」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제모을루는 이 논문에서 기술 진보의 ‘방향’—즉 어떤 생산요소를 보완하는 기술이 개발되는가—이 그저 외생적으로(exogenous)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a) 상대가격 효과와 (b) 시장 규모 효과라는 경제적 유인에 반응해 내생적으로(endogenous) 결정된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보였다. 기술 발전에 대한 투자 그 자체가 내생변수라는 것이다.

이는 굉장히 중요한 통찰이다. 기술 발전이 기업의 최적 투자 결정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라면, 그 투자를 이끄는 유인구조를 정부가 설계함으로써 기술 발전의 방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정책적 함의가 나오기 때문이다. 아제모을루는 존슨(Simon Johnson)과 함께 쓴 저서 『권력과 진보(Power and Progress)』(2023)에서 이 논리를 인류 기술사 전체로 확장한다. 기술이 소수만의 이익을 위해 쓰인 시대와 광범위한 번영을 낳은 시대를 가른 것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누구를 위한 기술을 만들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정치적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AI라고 다를 이유가 없다.

노동친화적 AI(PWAI)/조향(steering)이란 무엇인가

이런 이론적 토대 위에서 구체화된 정책 어젠다가 노동친화적 AI(Pro-Worker AI, PWAI)다. 아제모을루는 오토(David Autor), 존슨(Johnson)과 함께 2023년 CEPR 정책보고서 「Can We Have Pro-Worker AI? Choosing a Path of Machines in Service of Minds」에서 이 개념을 처음 제시했고, 올해 2월에는 이를 발전시킨 정식 논문 「Building Pro-Worker Artificial Intelligence」를 전미경제연구소(NBER) 워킹페이퍼로 내놓았다.

이 논문이 정의하는 PWAI란, 인간의 숙련과 전문성의 가치를 더 높이는 기술이다. 저자들은 기술 변화를 다섯 가지로 유형화한다.

  • 노동증강형(labor-augmenting): 노동자가 이미 하고 있는 과업을 더 잘하게 만드는 기술
  • 자본증강형(capital-augmenting): 기계·알고리즘이 현재 수행하는 작업을 더 낫게, 싸게, 빠르게 만드는 기술
  • 자동화형(automating): 기존에 노동자가 하던 과업을 기계·알고리즘으로 대체하는 기술
  • 전문성 평준화형(expertise-leveling): 특정 전문성이 필요했던 과업을 다른 영역의 노동자들도 수행할 수 있게 만드는 기술
  • 신규 과업 창출형(new task-creating): 인간이 수행할 새로운 과업 자체를 만들어내는 기술

이 중 노동자에게 명백히 유리한 것은 마지막 유형—인간의 새로운 전문성에 대한 수요를 만들어내는 기술—뿐이라고 지적한다.

그런데 저자들은 시장에 맡겨두면 PWAI가 저절로 나타나지는 않는다고 못 박는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유인의 문제다. 기업 입장에서는 전문성을 대체하는 자동화 기술을 개발·도입하는 쪽이, 새로운 과업을 만들어내는 기술을 개발하는 쪽보다 더 큰 경제적 수익을 안겨줄 가능성이 크다. 다른 하나는 이념의 문제다. 시장의 AI 담론 자체가 인간을 능가하는 범용인공지능(AGI)을 개발의 정점에 놓는 이념적 지향에 갇혀 있다는 것이 저자들의 진단이다.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또 하나의 개념이 조향(steering) 이다. 앤톤 코리네크(Anton Korinek, U of Virginia)와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 Columbia U)는 최근 NBER 워킹페이퍼(No. 34994) 「Steering Technological Progress」에서, 혁신의 방향을 노동 수요를 늘리는 쪽으로 유도하려면 어디에 집중해야하는지에 대한 이론틀을 제시했다. ① 기술과 노동의 보완성, ② 해당 재화 생산에서 노동이 차지하는 몫, ③ 영향받는 노동자의 상대적 소득 수준이 그 기준이다. 이들이 제시하는 정책 응용 사례에는 로봇세, 요소증강형 기술 진보 유도, 과업 자동화에 대한 대응이 포함된다. 특히 흥미로운 대목은, 사회안전망이 비효율적일수록 기술의 방향을 유도하는 데서 오는 후생상의 이득이 커진다는 지적이다.

PWAI와 조향, 두 논의가 도달하는 결론은 사실상 같다. 시장에 맡긴 AI 발전이 저절로 인간을 위한 방향으로 수렴하지는 않으며, 그렇게 만들려면 의도적인 개입과 설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발상이 너무나 이상적이고 순진하다는 반응도 있다. 실제로 필자가 만난 국내의 한 AI 기업인은 이런 방식의 ‘방향 유도’가 애초에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단칼에 잘라 말한 적이 있다. 실리콘밸리에서도 비슷한 회의론은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움직임들

그런데 이런 회의론에도 불구하고 변화의 움직임은 조금씩 감지되고 있다.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미국에서 3년을 사이에 두고 발표된 두 개의 공동선언문을 나란히 놓고 볼 때 드러난다. 2023년 5월 미국 AI안전센터(Center for AI Safety, CAIS)가 주도한 「AI 위험에 대한 성명(Statement on AI Risk)」은 “AI로 인한 멸종 위험을 완화하는 일은 팬데믹이나 핵전쟁 같은 사회적 규모의 다른 위험들과 함께 세계적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는 단 한 문장으로 이뤄져 있으며, 샘 올트먼, 제프리 힌턴, 다리오 아모데이 등 수백 명이 서명했다. 오로지 실존적 위험(existential risk) 하나에 초점을 맞춘 성명이었다.

반면 올해 7월 13일 스탠퍼드 디지털경제랩(Stanford Digital Economy Lab)이 주도하고 에릭 브린욜프슨, 아제이 아그라왈, 앤턴 코리네크, 톰 커닝햄이 조직한 「우리는 지금 행동해야 한다(We Must Act Now)」 성명은 완전히 결이 다르다. 이 성명은 AI가 향후 10년 내 산업혁명보다 크면서도 훨씬 빠른 속도의 경제적 전환을 몰고 올 수 있다고 경고하며, 대량 실업의 위험과 생활수준 향상의 기회를 동시에 언급하고, 경제학자와 정책 입안자, 기술 리더들이 지금부터 AI를 인간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이끌 유인구조와 안전장치, 제도를 갖춰야 한다고 촉구했다. 서명자는 16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포함해 처음 200명 이상으로 출발했고, 이후 빠르게 늘어 2천 명에 육박하고 있다. 이렇게 2023년 성명과 2026년 성명 사이에 놓인 3년의 시간이, 경제학계의 논의가 ‘위험을 경고하는 것’에서 ‘방향을 설계하는 것’으로 옮겨간 궤적을 그대로 보여준다.

논의의 확장, 그리고 우리나라의 현주소

PWAI와 조향에 관한 논의는 이제 기술(R&D) 투자 유인이라는 좁은 틀을 넘어서고 있다. 아제모을루·오토·존슨의 논문만 해도 의료·교육 분야에 대한 표적 투자, 세제 개편, 반독점 정책 집행, 노동자 전문성에 대한 지식재산권 보호 등 아홉 가지 정책 방향을 구체적으로 논의한다. 본격적인 정책적 고민이 시작된 것이다.

다만 최근 전세계 AI 정책 담론의 흐름을 지켜보면서 느끼는 것은, 여전히 대부분의 선진국이 바라보는 AI는 전략산업이고, 경쟁의 무기이고, 나아가 국가 안보의 문제라는 점이다. 최근 우리나라의 AI 정책 역시 이 흐름과 무관하지 않고, 산업정책적 관점—반도체, AI 인프라, 로봇 등 전략 산업의 미래 성장동력으로의 육성—에 무게가 실려 있는 것이 사실이다. 2026년 예산에서 3배 이상 확대된 AI 투자 사업들, 3대 메가프로젝트의 출범, 새로 설계 중인 미래대응기금 등에서 이러한 관점을 확인할 수 있다. 대규모의 민간 투자와 정책 금융을 결합하고, 정부가 각종 인프라 구축을 지원하는 등 기술의 ‘양’과 ‘속도’를 키우는 데 국가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반면, 그 기술이 노동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은 아직 정책 담론의 중심에 서 있지 못하다.

바로 이러한 담론 부재의 틈에서, 성과급 논쟁이 터져 나왔고, 소위 초과이윤초과세수의 활용 문제가 우리나라 경제정책의 핵심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기술의 방향을 사전에 설계하지 못하면 사후적으로 훨씬 더 크고 다루기 어려운 분배 문제와 씨름해야 한다는 것을, 한국 사회가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있는 셈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 사회 지식인들의 고민과 역할이 계속되어야 한다. 고민의 시작점은 기술발전의 방향성 분석과 유인 설계가 되어야 하고, 역할의 핵심은 사회적 담론의 조성, 토론과 합의의 유도, 그리고 새로운 사회에서의 최적 정책 방향의 설계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우리 랩이 작지만 의미있는 기여를 할 수 있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참고문헌

  1. Acemoglu, Daron (2002), “Directed Technical Change,” Review of Economic Studies, 69(4), 781–809. 원문
  2. Acemoglu, Daron & Simon Johnson (2023), Power and Progress: Our Thousand-Year Struggle Over Technology and Prosperity, PublicAffairs. (국역: 『권력과 진보』)
  3. Acemoglu, Daron, David Autor & Simon Johnson (2023), “Can We Have Pro-Worker AI? Choosing a Path of Machines in Service of Minds,” CEPR Policy Insight No. 123. 원문
  4. Acemoglu, Daron, David Autor & Simon Johnson (2026), “Building Pro-Worker Artificial Intelligence,” NBER Working Paper No. 34854. 원문
  5. Korinek, Anton & Joseph E. Stiglitz, “Steering Technological Progress,” NBER Working Paper No. 34994. 원문
  6. Korinek, Anton & Lee M. Lockwood (2026), “Public Finance in the Age of AI: A Primer,” NBER Working Paper No. 34873.
  7. Hacker, Jacob S. (2011), “The Institutional Foundations of Middle Class Democracy,” Policy Network.
  8. Center for AI Safety (2023.5.30), “Statement on AI Risk.” 원문
  9. Stanford Digital Economy Lab (2026.7.13), “We Must Act Now: A Statement on AI’s Transformation of the Economy.” 원문
  10. OpenAI (2026.4.6), “Industrial Policy for the Intelligence Age: Ideas to Keep People First.”

본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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