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당신의 직업을 빼앗을까요? 스탠퍼드 논문이 밝힌 '의외의' 미래
“AI가 결국 인간의 모든 일을 대체할 것이다.”
AI 기술이 발전하면서 우리 마음속에는 막연한 두려움과 피로감이 쌓여가고 있습니다. 정말 우리는 AI에게 일자리를 모두 내주고 말까요?
이 질문에 대해 최근 스탠퍼드 대학교(Stanford University)에서 아주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2025년 6월 11일에 발표된 “Future of Work with AI Agents(AI 에이전트와 함께하는 일의 미래)" 라는 논문은, AI가 인간을 대체할 것이라는 단순한 통념에 데이터에 기반한 깊이 있는 반박을 제시합니다.
이 연구가 특별한 이유는 AI 개발자나 기술 전문가의 시선이 아닌, 실제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1,500명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분석한 최초의 대규모 연구라는 점입니다. 논문은 AI 기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미래에 진짜 주목받게 될 인간의 역량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44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내용 중 핵심적인 메시지를 중심으로 AI 시대의 일의 미래를 함께 그려보겠습니다.
1. 사람들은 AI의 ‘완전 자동화’를 원하지 않는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결과는, 노동자들이 AI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한 부분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전체 업무의 46.1% 에 대해서만 노동자들이 AI 자동화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이는 과반수의 업무에 대해서는 자동화에 대한 선호도가 높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자동화를 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놀랍게도 ‘일하기 싫어서’가 아니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업무에서 벗어나 더 가치 있는 일에 시간을 쓰고 싶다” 는 것이었습니다.
▲ 그림 1: 노동자들의 자동화 선호 이유 (자료: “Future of Work with AI Agents”, Figure 4b) 가장 많은 응답자가 ‘더 가치 있는 일에 시간을 쓰기 위해’ 자동화를 원한다고 답했습니다.
이는 노동자들이 AI를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대체재’가 아닌, 자신의 업무 가치를 높여주는 ‘조력자’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물론, 이러한 선호도는 산업 분야별로 뚜렷한 차이를 보였습니다.
- 컴퓨터/수학, 경영, 금융 분야: 약 50%의 높은 자동화 선호도
- 예술, 디자인, 미디어 분야: 17.1%의 낮은 자동화 선호도
창의적이거나 인간적인 감성이 중요한 분야일수록 자동화 선호도가 확연히 떨어지는 모습을 통해, 우리는 AI가 넘볼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영역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2. AI가 할 수 있어도 ‘우리가 원하지 않는’ 일들
AI 기술은 이미 많은 것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해서 현장에서 반드시 환영받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스탠퍼드 연구팀은 ‘노동자의 자동화 선호도’와 ‘전문가가 평가한 AI의 기술적 역량’을 기준으로 업무를 4개의 영역으로 나누었습니다.
▲ 그림 2: 자동화 선호도-역량 분석 (Desire-Capability Landscape) (자료: “Future of Work with AI Agents”, Figure 5a)
🟢 자동화 청신호 (Automation “Green Light” Zone): 노동자도 원하고, AI 역량도 충분한 영역입니다. 고객과의 미팅 일정 조율, 정기적인 데이터 품질 보고서 확인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 자동화 적신호 (Automation “Red Light” Zone): AI는 잘할 수 있지만, 정작 노동자들은 원하지 않는 영역입니다. 새로운 소프트웨어 제품에 대한 조사나 잠재적 공급업체에 연락하는 업무 등이 포함됩니다. 노동자들은 이런 일을 AI에 맡기기보다 직접 챙기길 원했습니다.
🟡 R&D 기회 (R&D Opportunity Zone): 노동자들은 간절히 원하지만, 아직 AI의 기술력이 따라가지 못하는 영역입니다. 변수가 많은 게임 개발 프로젝트의 전체 일정을 조율하거나, 여러 프로젝트의 예산을 복합적으로 판단하여 조정하는 일들이 대표적입니다. 이는 단순 반복이 아닌, 고차원적인 상황 판단과 예측이 필요한 일들입니다.
⚪️ 낮은 우선순위 (Low Priority Zone): 노동자도 원하지 않고, AI도 잘하지 못하는 영역입니다. 고객의 분실 수하물을 추적하는 일처럼, 감정적 대응과 복잡한 문제 해결이 얽힌 업무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이 분석은 AI 기술 개발이 단순히 ‘기술적 성능’만을 쫓을 것이 아니라, ‘인간이 진짜로 필요로 하는 것’ 이 무엇인지에 집중해야 한다는 중요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3. 미래의 협업: AI와 ‘동등한 파트너’가 되다
연구에서 가장 흥미로운 개념 중 하나는 ‘인간 주도성 척도(Human Agency Scale, HAS)' 입니다. 이는 업무 수행 시 인간이 얼마나 주도권을 갖기를 원하는지를 5단계로 나눈 것입니다.
분석 결과, 대다수 직업(45.2%)에서 가장 선호되는 협업 형태는 H3: 동등한 파트너십(Equal Partnership) 이었습니다.
▲ 그림 3: 직업별 선호하는 인간 주도성 척도(HAS) 분포 (자료: “Future of Work with AI Agents”, Figure 6b) H3(동등한 파트너십)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며, 완전 자동화(H1)나 완전 인간 주도(H5)의 극단적인 형태는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이는 AI가 모든 것을 알아서 처리해주거나(H1), 인간이 모든 것을 통제하고 AI는 보조만 하는(H5) 극단적인 관계보다, AI와 인간이 서로 긴밀하게 협력하며 시너지를 내는 모델을 사람들이 원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중요한 일은 내가 직접 확인해야 마음이 놓인다"는 인간의 심리가 반영된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4. AI 시대, 진짜 가치 있는 능력의 대전환
그렇다면 AI와의 협업이 보편화될 미래에, 우리는 어떤 능력을 키워야 할까요? 논문은 ‘현재 고임금을 받는 기술’과 ‘미래에 높은 인간 주도성을 요구하는 기술’을 비교하며 그 답을 제시합니다.
▲ 그림 4: 평균 임금과 인간 주도성 요구 수준에 따른 핵심 기술 순위 변화 (자료: “Future of Work with AI Agents”, Figure 7) 왼쪽은 현재 임금 기준 순위, 오른쪽은 AI 시대에 요구되는 인간 주도성 기준 순위입니다. 선의 움직임을 통해 미래 가치의 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가치가 하락하는 능력:
- 데이터 및 정보 분석 (Analyzing Data or Information): 현재는 최고 수준의 고임금 기술이지만, AI가 가장 잘 대체할 수 있는 영역이기에 인간 주도성의 필요성은 크게 떨어집니다.
가치가 급상승하는 능력:
- 조직화, 기획, 우선순위 설정 (Organizing, Planning, and Prioritizing Work): 복잡한 상황 속에서 목표를 설정하고 계획을 세우는 능력은 AI가 모방하기 어려운 핵심 역량으로 부상합니다.
- 타인 교육 및 훈련 (Training and Teaching Others): 지식과 경험을 다른 사람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성장시키는 능력의 가치가 크게 높아집니다.
- 타인 지원 및 관리 (Assisting and Caring for Others): 공감에 기반한 지원과 돌봄 역시 인간 고유의 중요한 역량으로 자리매김합니다.
결론적으로, AI가 정보 처리와 분석을 대신해주면서, 인간은 기획력, 소통 능력, 공감 능력, 교육 능력과 같은 대인관계 및 조직 관리 역량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게 될 것입니다.
결론: AI는 질문을 던지고, 답은 우리에게 있다
스탠퍼드의 이번 연구는 AI 시대의 미래가 기술 자체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술을 사용하는 우리의 선택과 요구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AI는 우리에게 ‘대체될 것인가’라는 두려움 섞인 질문을 던졌지만, 현장의 노동자들은 ‘어떻게 협력할 것인가’라는 현명한 질문으로 답하고 있습니다.
이제 공은 우리에게 넘어왔습니다.
나는 AI와 어떻게 협력하며 나만의 가치를 만들어 나갈 것인가? 우리 사회는 미래 세대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는 것이야말로, 다가오는 AI 시대를 두려움이 아닌 기회로 만드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 참고자료
- 📄 논문 전문: Future of Work with AI Agents (arXiv)
- 🔍 주요 시각 자료: Figure 4b, 5a, 6b, 7